생태적인 육아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아이를 임신하고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했습니다. 의학적 처치를 최소화하고 엄마와 아빠가 함께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이를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자연주의 출산 준비과정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오래전 배우 최정원 씨의 수중분만 영상을 인상 깊게 봤던 기억으로 자연주의 출산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고 나도 저렇게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6년도에 출산을 했는데 그때 부산에서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병원은 한 군데밖에 없었는데 워낙 산부인과로 유명한 곳이라 고민 없이 그 병원을 선택했습니다. 조산원에서 출산을 하고 몸조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부산에 있는 조산원을 검색했습니다. 딱 한 군데 조산원이 남아있어 전화로 예약을 하고 조산원 진료도 받았습니다. 그 뒤로는 병원과 조산원 진료를 병행하며 몸관리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진행하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교육과 조산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이 어느 정도 일치했기에 가능하면 조산원에서 출산하고 안되면 병원에서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조산원도 당시 2만 원의 진료비를 내야 하기에 비용은 이중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태아를 건강하게 잘 키워야 자연주의 출산이 가능하기에 임산부도 다닐 수 있는 요가 수업을 찾았습니다. 스님들이 진행하시는 요가수업이었는데 몸에 부담 없이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임신 중이었을 때만큼 운동을 열심히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출퇴근 거리가 멀어 하루 2시간 이상은 운전을 해야 했는데 요가 수업을 가면 돌아가는 길이라 30분은 더 걸렸습니다. 그래도 주 3회 운동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다녔고, 때로는 주말에도 요가를 하러 갔었으니까요. 밀가루 음식은 먹지 말라고 해 좋아하던 빵도 안 먹고, 너무 먹고 싶을 때는 우리밀로 만든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만삭까지 8킬로밖에 몸무게가 늘지 않았고, 아이도 머리가 작고 3킬로가 넘지 않는다고 해 자연주의 출산을 위한 준비는 잘한 것 같습니다. 자주 만나던 사람들도 8개월이 되어서야 임신인걸 알 정도였으니 진짜 살도 안 찌고 배도 작았던 것 같아요. 또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는 대신 미리 마사지를 해야 한다고 해 그것도 열심히 했었습니다. 초산이 다 그렇듯 출산예정일이 지나도 아이는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고, 그때부터 저는 15층 높이 아파트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내렸고, 하루 2~3시간씩 공원을 걸었습니다.
드디어 출산 당일, 새벽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정도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보통 진통이 시작되면 배가 아프고 진통의 간격이 처음에는 길었다가 점점 줄어듭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허리가 아팠고 통증 간격이 2분 정도였습니다 자연주의 출산 센터에 전화를 하니 이제 진통이 시작되었으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너무 허리 통증이 심해 견딜 수 없다고 하니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들어가 있으면 좀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욕조 속에 있는 동안은 통증이 훨씬 줄어든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물속에 있을 수도 없어 밖으로 나오면 고통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오전 일곱 시가 되어 조산원에 전화했더니 선생님이 일단 와서 보자고 하십니다.
조산사 선생님이 저를 딱 보시고는 출산을 하려면 애기가 밑으로 내려와서 배가 축 처져야 하는데 저는 배가 안 내려와 있다고 조산원에서의 출산은 안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아파 죽겠는데 제대로 된 진료도 없이 얼굴만 보고는 안 되겠다고 하니 그 순간은 너무 기분이 나빴어요. 조산원을 나서는 저에게 수술하는 것도 괜찮다고 하셨는데 그 당시 저는 너무 아프고 짜증이 나 조산사 선생님의 말이 귀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다시 집으로 가 짐을 챙기고 자연주의 출산 센터로 갔습니다. 센터 안에 있는 분만실은 개인실이고 적당이 어두운 조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기에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출산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산소호흡기를 깨워 주니 훨씬 숨쉬기도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계속되었어요. 둘라 선생님들이나 남편이 허리를 좀 눌러 주면 훨씬 났지만 간격도 없이 계속되는 진통에 버티다 버티다 결국은 무통 주사를 맞았습니다.
무통주사는 진짜 신세계가 맞더라고요. 너무 아파서 배가 고픈 줄도, 잠이 오는 줄도 몰랐는데 무통 주사를 맞고는 코를 골며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약발이 떨어지자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의사 선생님들이 와서 내진을 했는데 자궁문이 다 열렸지만 아기가 내려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상하다며 다른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까지 와서 내진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진이 기분 나쁘다고 하던데 저는 너무 고통이 심해 내진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다리를 벌리고 힘을 주게 했지만 똥만 나오고 아기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의사가 더 시간이 지나면 자궁이 파열될 수도 있다고 수술해 진행하자고 했습니다 급하게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는 고통이 너무 극심해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라고 울다시피 했습니다. 수술을 하는 동안 하반신 마취만 해서 의사 두 명이 "애기가 꽉 끼었네. 잘 안 빠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병원과 조산원의 진료를 번갈아 받고, 운동이며 음식 관리도 열심히 했지만 결국은 제왕절개로 출산했습니다. 병원비에 조산원비에 자연주의 출산센터 비용까지 해서 병원비만 많이 들었네요. 나중에 허리를 고치느라 또 몇 백만 원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자연주의 출산은 대실패였습니다. 자궁문은 다 열렸는데 골반이 벌어지지 않아 아이 머리가 골반뼈에 끼어 더 이상 내려오지 않은 거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진짜 아이 머리에 눌린 자국이 있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과거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은 적이 있고, 평소에도 허리가 자주 아팠기에 처음부터 자연주의 출산도 자연분만도 불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 한 번 잘 나아보겠다고 너무 고통을 참은 탓에 허리가 삐뚤어져서 출산 후에도 한참이나 고생을 했습니다. 또 제가 계획하고 준비했던 데로 출산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우울감이 지속되었어요. 출산 당일까지 자연주의 출산이 가능한지는 전문지식을 가진 의사도, 경험이 많은 조산사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조산사 선생님은 안될 거라 생각해서 수술도 괜찮다고 하신 것 같네요.
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요. 처음에는 괜히 자연주의 출산을 알게 되어 저도 남편도 아이도 고생만 한 것 같아 출산의 기억이 너무 싫었습니다. 출산 때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꼭 모유수유를 해야겠다 싶어 예약했던 산후조리원을 취소하고 조산원에서 모자동실로 몸조리를 했습니다. 자연주의 출산도 모유수유도 안되면 좀 버려도 되는데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몸조리는 제대로 안됩니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아이와 가족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의학이 발달하고 병원에서의 출산이 당연하게 되면서 자연분만을 하느냐 제왕절개를 하느냐 정도의 고민이었다면 지금은 산모와 가족의 선택에 따라 좀 더 다양한 출산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혹시나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하셨다면 아름다운 후기만 보지 마시고, 이렇게 실패하는 경우도 있구나를 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긴 글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케이스는 과거였으면 애기 놓다가 죽을 수도 있는 희박한 경우였으니 너무 두려워하시진 마시고요. 많이 알아보고 고민해서 아이와 우리 가족을 위한 최선을 선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